안녕하세요 저는 가와사키 목자의 조인선입니다.
저는 확신의 삶 간증에 앞서 확신의 삶을 하는 7주라는 과정 동안 목녀님과 저의 사이에서 함께 해주시며 은혜 주시고, 간증까지 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7주 동안 수고해주시며 바쁜 시간을 쪼개서 저와 함께 해주신 목녀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울산에서 나고 자란 울산 토박이입니다. 그리고 같은 동네의 남편과 소개로 만나 결혼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다니게 된 교회도 마침 가정교회였고, 처음 시작하게 된 신앙생활도 목장모임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뭐가 뭔지도 모르는 데다가 결혼까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목자 목녀님이 이것 하자 저것 하자면 군소리 한번 없이 따라갔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에 등록해보자면 “네, 그러죠 뭐”, 삶 공부를 해보자면 “네, 그러죠 뭐” 라고 하면서요. 사실 그게 순종이라기보단 싫다고 하면 상대방이 실망 할까봐, 사실 기대하는 것도 없는데 그렇게 해보겠다고 대답부터 해버리는 것입니다.
울산에서부터 이곳까지 이사 와서 제자교회에 다니게 되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사 와서 이틀만인 첫 주일예배에 예수 영접 모임에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가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서 일을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확신의 삶 공부를 시작하자는 제의까지 받았을 때 무슨 정신이었는지 알겠다고 해버렸습니다.
사실은 ‘예전에 한번 해 봤던 건데, 아는 내용 같은데 꼭 두 번이나 들어야 할 내용일까?’라고 생각도 했었습니다. 심지어 확신의 삶은 목녀님과 1:1로 하는 것이라고 해서, 사실 피하고 싶었던 삶 공부 중의 하나였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는 목녀님은 그저 판단하고 잘잘못을 가려내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목녀님과 대화의 자리에만 가면 언제나 돌아오는 건 내 잘못들 뿐, 그래서 1:1 로 만나서 깊은 교제의 자리를 경험했다는 다른 분들의 간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굳이 이 삶 공부를 해야 하나.. 라는 마음도 들었을 정도니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고민했는지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
시간은 이미 흐르고 있었고, 저는 고민만 하다가 결국 정신 차리고 보니 교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파일철 맨 앞에 제 이름이 써 있는 것을 보고, 아 빼도 박도 못 하겠다 생각하고 이렇게 된거 진지하게 삶 공부에 임해 보자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진행하게 된 삶 공부지만 하나님은 저에게 큰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목녀님과 과거부터 현재까지 서로에 대해 깊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상처받지 않고 여기까지 온 사람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리고 목녀님도, 부모님에게서나 주변 지인들, 혹은 교회 안에서도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상처를 받고 힘들지만 기도하면서 사람에게 터놓으면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터놓을 수 있는 것, 그래서 기도하는 것이 결국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싸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저에게 있었던 버려야 할 속성을 새롭게 알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보다 분명 많은 부분이 변해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옛 속성을 가지고 있고, 상처로 인해 아주 크게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버려야 할 부분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저는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힘든 부분이라는 것, 그것이 부모님에게로 온 상처가 원인이였다는 것, 앞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섬기는 방법을 재정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전에는 VIP로 섬기는 사람들에게 제 마음 가는 대로 제가 편한 방법대로 섬기고 있었는데, 제가 그분들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어떻게 섬겨야 할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지금 삶 공부를 하는 순간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그분들을 위해 구해야 할 것, 찾아야 할 것, 두드려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이렇게 큰 은혜를 주셨는데 제가 잘해서, 삶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서 얻은 은혜가 아닙니다. 어느 날은 숙제를 못해서 못하겠다고 당일 아침에 목녀님께 전화해서 이번 주는 자체 휴강을 하자고 하거나, 목녀님이 일이 있어 늦게 시작해야겠다고 할 때 다행이라고 하면서, 허겁지겁 숙제를 해서 겨우 수업을 하거나, 파일은 어딘가에 두고 와서 목녀님 파일을 같이 보면서 수업하기도 하고, 말씀 암송은 립씽크로 대체한 경우도 몇 번입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주님께서는 함께 해주시며 주시는 은혜가 있었고, 저는 두 번째 확신의 삶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새로운 확신의 삶 공부로 다가왔습니다. 어느 누군가가 ‘삶 공부를 할 때마다 그때의 은혜가 있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말을 지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계속 있을 삶 공부들이 기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제 이전처럼 아무런 감정도 없이 삶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삶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 개강하는 생명의 삶 공부에도 그저 가라고 해서가 아니라 삶 공부의 마지막이 어떤 은혜로 마무리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삶 공부를 시작하면서 마음속에 떠올랐던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나누며 간증을 마치려고 합니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겠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버리겠다.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요한계시록 3장 15~17절말씀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에서 각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내용 중 하나입니다. 저는 이제껏 삶 공부를 하는 것이나, 목장모임에서 나눔을 했던 것에서 제가 마음속 깊이 뜨거움으로 혹은 아주 차가움으로 했던 것이 아니였을을 고백합니다. 남에게 이끌려서 하라면 하고 하라고 하지 않으면 스스로 나서서 하지 않는 제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지금 같은 마음으로 유지하고 있진 않겠지만, 그때마다 이 말씀을 붙들고 다시금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겠습니다.
미흡한 간증을 들어주신 성도여러분께도 감사드리며, 하늘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영혼구원하여 제자만들어 가는 일에 너무나 귀하게 사용되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