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수지예일교회 박태규목사님의 휴스턴서울교회 연수보고서 내용 일부를 옮깁니다.
섬김을 뛰어 넘는 구원의 기쁨을 보았습니다.
가정교회를 시작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섬김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사실 이 섬김이라는 단어는 교회 안에서나 목회자의 설교 속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입니다. 그러나 가정교회를 시작 하며 느끼는 섬김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가정교회를 시작하며 섬김을 강조하고 밥하는 문제로 많은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왜 밥을 해야 하는 가를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밥을 하는 것이 단순히 가족은 밥을 주지만 손님은 다과를 준다는 의미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휴스턴 서울 교회의 목자나 목녀의 섬김 속에는 영혼 구원의 기쁨과 그 맛을 아는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매일 서울 교회 식당은 누군가가 밥을 하고 밥을 먹습니다. 왜냐면 구원받는 무리와 훈련 받고 세워져 가는 제자들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주 동안 식당 안에서 밥하는 형제자매들의 얼굴을 보며 행복해 하는 모습 속에서 느낀 것은 섬김을 뛰어 넘는 구원의 기쁨이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묻지는 않았지만 저들에게 왜 밥하느냐고 물으면 저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밥 먹이기 위해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영혼구원하기 위해서 밥하고 섬긴다.
예수 영접 모임을 참관하고 나오는데 많은 목장 식구들이 꽃다발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마 목장 식구들 모두가 영접 모임에 참여한 형제가 예수님을 영접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날 그 형제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목장 식구들은 꽃을 들고 밖에서 형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내 자신이 당황스러웠습니다. 목자와 목원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자와 목원들의 반응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약간의 당황스러움은 있었지만, 형제를 껴안고 격려하고 위로하며 그래도 영접 모임에 참여 한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면서 형제를 데리고 나가는 모습에서 눈물이 솟아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섬김에 담긴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했습니다.
휴스톤 서울 교회의 목자, 목녀들의 섬김은 너무나 대단하고 탁월했습니다. 처음에는 ‘다 미국에 와서 어느 정도 능력이 되기 때문에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섬김이라는 것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은 희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그 섬김에는 구원의 즐거움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목자, 목녀 모임에서 나온 한 이야기를 들을 때 소름이 돋았습니다. 목장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목원으로 말미암아 어려워하는 한 목자의 이야기를 들은 목자들이 같이 아파하고 위로하며 “그런 목원은 목장에서 나가주었으면 좋게다.”고 말 할 때 한 목녀님은 “그 목원 우리 목장에 주세요. 이렇다고 버리고 저렇다고 버리면 누가 남겠습니까? 그 목원 우리 주세요.” 휴스턴 서울 교회가, 최 목사님이, 그리고 목장에서 한 영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지금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낍니다. 휴스턴 서울교회 목자, 목녀들에게는 섬김을 뛰어 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