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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신약 교회의 회복을 위해 헌신한 휴스턴서울교회 최영기 목사가 2012년 67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1993년에 휴스턴서울교회의 3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최 목사는 당시로서는 교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가정교회’라는 새로운 목회 모델을 시작, 20년간 한 치의 흔들림이나 망설임 없이 달려왔다. 가정교회는 성경적인 교회 회복을 위한 새로운 모델을 찾던 한국 교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두란노서원에서 연말에 출간될 도서 준비차 방한한 백발의 청년 최영기 목사에게 가슴 벅찬 감격의 현장, 가정교회 이야기를 들어본다.


목사님께서는 미국에서 전자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신 후 사회에서는 연구원으로, 교회에서는 평신도 사역자로 활발하게 활동하시다가 40세가 넘어 목회자의 길로 접어드셨는데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모태신앙인이었지만 유학 시절 성경을 읽으면서 비로소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할아버지께서 24년간 목회하시다가 순교하신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난 까닭에 선택의 여지없이 교회에 다녔어요. 그저 술 담배 안 하고 주일에 교회 가면 크리스천인 줄 알고 교회에 다녔어요.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서 보니 교회가 너무나 초라한 집단인 거예요. 그렇게 초라한 집단의 일원이 되기 싫었던 저는 그때부터 교회와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제대 후 미국 유학을 갔습니다. 유학 생활을 하면서 성경을 가까이 하게 됐고, 예수님의 부활이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비로소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열심히 교회 봉사하고 전도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어요.


돌이켜보면 그때 이미 목회자가 되려는 무언가가 제 속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귀 기울이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교인들에게 ‘이렇게 사십시오’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라고 보여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만약 내가 목사가 되면 직업적인 환경 탓에 ‘이렇게 사십시오’라는 말밖에 못해줄 테니 비록 평신도지만 목사처럼 살겠다는 건방진 생각을 했지요. 그렇게 평신도로서 교회에서 열심히 사역하다가 마흔한 살 때 하나님께서 평신도 사역 그만하고 평신도 사역자를 키우는 자가 되라는 소명을 주셨어요. 사실 저는 이게 하나님의 부르심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해서 고심했어요. “하나님, 이 세상에 왜 또 한 명의 목사가 필요합니까?”라고 기도했지요. 그때 담임목사가 돼서 목회의 꿈을 펼치려는 사람이 많지만 이제는 교인들의 필요가 다양해졌기 때문에 담임목사 혼자서는 그 모든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니 담임목사 그늘 밑에서 교인들의 필요만을 위해서 일하는 전문 사역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주셨어요. 그래서 수련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평생 교육 목사로 목회하고 은퇴할 생각으로 목사가 됐고, 출석 교회에서 교육 목사로서 목회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목회의 길에 들어섰지만 교회의 모습과 목회가 성경의 기준대로 되지 않아 늘 마음이 불편했어요. 그러던 차에 1992년 휴스턴서울교회에서 담임목사 청빙을 받고 성경적인 교회를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에 부임하게 됐어요. 이왕 할 거면 성경적으로 해보자, 신약 교회를 보니까 가정교회인 것 같으니 가정교회로 하겠다고 교회에 조건을 걸고 승낙 후 부임한 것이죠. 그렇게 시작해서 20년간 가정교회 목회를 했습니다.


전형적인 목회 방법이 아닌 ‘가정교회’ 목회를 시작하셨는데 이전에 평신도 사역자였을 때 가졌던 교회에 대한 생각이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정교회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시작하셨는지요?


교육 목사로 사역할 때 몇 가지 큰 부담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성도 간에 진지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교인들이 문제가 생기면 신앙 공동체를 찾지 않고 술집을 찾는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교회에 가면 기껏 듣는 소리가 회개하라는 것과 원론적인 말뿐이니 입을 열지 않는 것이지요.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공동체인가,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교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가족공동체인데… 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또 하나의 부담은 전도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로 온 교인도 대부분 수평 이동이지 새롭게 예수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성경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니 제각기 다 역할이 있다고, 즉 교회 안에 쓸모없는 사람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교회를 둘러보면 교인의 30%만 직분자로 사역할 뿐 나머지 70%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거예요.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이 아닌데 왜 이럴까, 하는 고민이 있었고 공간이 부족해 건축을 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어요.


이런 고민 가운데 목회하다가 휴스턴서울교회에 부임해서 가정교회를 하니까 이 세 가지 문제가 일시에 사라졌습니다. 우선 집에서 모이는 가족공동체라서 서로의 필요를 잘 알고, 필요가 생기면 도와주고 기도해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됐어요. 교인들 간의 관계가 형식적이지 않고 실제적으로 친밀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고민거리였던 전도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21세기는 감성의 시대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실제로 체험하길 원하지요. 하나님을 어떻게 체험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목장에 초청해서 목장원들이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이 모습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요.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는 것이지요. 진솔하고 구체적인 삶의 나눔이 있고 작은 일이지만 함께 기도하고, 또 기도가 응답되는 모습을 보면서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러다가 적당한 때 말씀 공부를 하게 하면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사실 이민 교회는 이동이 많기 때문에 전도 안 하면 줄어들게 됩니다. 휴스턴서울교회를 통해서 구원 받는 사람들도 대개 주재원, 유학생 등이에요. 예수 영접하고 교회 생활하다가 한국으로 가는 사람들이죠. 제가 휴스턴서울교회에 부임했을 때 장년이 110-140명이었는데, 은퇴할 때 1000명 정도 됐어요. 주일학교를 합치면 2000명 정도 되지요. 목장 23개로 시작해서 180개가 됐고요. 중요한 것은 교인의 84%가 저희 교회에서 침례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세 번째 고민이었던, 교회에서 아무런 사역을 하지 않는 70%의 교인들의 문제도 가정교회를 하면서부터 사라졌어요. 10명 정도가 모이는 가정교회에서 교회의 사명을 다하자면 일이 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있어서는 안 되거든요. 일단 목자가 필요하죠, 성경 공부 인도자도 필요하고 모일 때마다 식사를 하니까 친교 담당자도 있어야 하고, 각 가정교회마다 선교지를 한 곳씩 후원하니까 선교 담당자, 찬양 인도자 등 모든 사람이 사역을 맡을 수밖에 없지요. 각 목장이 영혼 구원해서 제자 만드는 공동 목표를 놓고서 목장원들이 뭔가를 하나씩 맡고 있어요. 직분을 위한 직분이 아니에요.


많은 분들이 제가 꿈과 비전과 계획을 갖고 가정교회를 시작한 것으로 아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성경 하나 붙들고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대다가 개헤엄 배우듯이 가정교회가 세워진 거예요. 휴스턴교회에 부임한 후 교인들을 만날 때마다 가정교회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는데 한 사람도 못 알아듣는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저도 가정교회가 뭔지 잘 몰랐거든요. 신약 교회가 가정교회였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요. 한 자매의 말이 당시의 교회 분위기를 잘 말해 줍니다. “목사님이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잘 못하겠는데, 그래도 목사님이 좋아하시는 거니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가정교회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것은 무엇인지요?


먼저, 하나님의 역사에는 흐름이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예를 들어 노방전도가 굉장히 효과적일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지요. 또 한때는 부흥회가 굉장히 효과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거든요. 시대가 바뀜에 따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법도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의 정신을 잡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성경이 아니라면 아닌 줄 알고, 성경이 하라면 하고, 성경이 하지 말라면 안 하는 ‘성경에 대한 단순한 순종’을 실천하자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가정교회도 그렇게 해서 나온 거예요. 성경이 그렇다고 하니 해 봤어요. 해 보니까 좋은 점이 많은 거예요. 해야 할 이유를 발견한 것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목회자들이 영적인 힘이 없는 이유는 너무 따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세밀한 걸 갖고 얘기하다가 큰 것을 놓치는 거예요. 저는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하나님이 제게 이런 생각을 주셨어요. ‘영기야, 넌 나한테 한 번도 순종한 적이 없다. 넌 나한테 순종한 것이 아니라 동의한 것이다.’


한국 교회는 지금 너무 많이 곪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 믿어야만 구원 얻는다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어차피 욕먹게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에요. 욕의 내용이 문제지요.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어떻게 양반하고 상놈하고 같이 예배를 드리냐’, ‘주일이라고 일을 안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너네는 조상도 없냐. 어떻게 절을 안 하냐’는 것들로 욕을 먹었어요.

그런데 현대 크리스천들은 ‘너네도 우리하고 똑같은 성공주의, 물질주의, 권위주의에 빠져 있으면서 예수 믿는 것 하나 가지고 자부심 느끼는 것 아니냐’는 욕을 듣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어떤 특별한 해법을 찾을 때가 아니라 성경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가정교회는 평신도 중심의 교회인데 목회자는 어떤 일을 하는지요?


에베소서 4:11-12은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11절에 나오는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와 같은 자들은 모두 말씀 사역자들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정식 신학 교육을 받고 안수 받은 목사와 비슷합니다. 이들에게 주신 목적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은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성도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교회를 세우고 목사는 성도를 온전케 해서 성도가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지요.


목사님께서는 가정교회의 원리를 성경에서, 제자훈련의 원리는 예수님에게서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 열둘을 세우시고 함께 있게 하시고 보내사 전도도 하게 하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제자훈련을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훈련 방식은 ‘지식 전달’이 아니라 ‘능력 배양’이었습니다. 지식을 쌓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훈련 방식은 ‘교실 강의’가 아니라 ‘현장 실습’이었어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내는 것입니다.

지금의 제자훈련은 지식 전달에 초점을 둔 교실 강의입니다. 보내야 하는데 자꾸 앉혀놓고 가르치니까 제자가 아니라 학자가 키워지는 거예요.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지 않는 이유는, 목사나 지도자들이 이와 같은 계몽주의의 영향에서 못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계몽주의의 가정은 ‘무지=죄’예요. 그래서 교육을 통해 무지를 깨뜨리고 유토피아에 이르고자 합니다. 그런데 2차 대전 때 세계에서 민도가 가장 높다고 여겨진 독일 사람들이 유대인을 학살하는 것을 보면서 계몽주의가 길을 잃고 반대 방향, 곧 실존주의로 갑니다. 실존주의는 이성을 부인하고 논리를 부인하죠. 그러나 사실 실존주의는 감정적인 반응이지 철학적인 가치는 없어요. 어찌됐든 역사는 이처럼 계몽주의와 실존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아직 계몽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목사님들은 여전히 ‘몰라서 그런다’, ‘깨닫지 못해서 그런다’를 반복해요. 물론 배우고 깨닫는 것도 필요합니다, 예수 믿고 나서 2, 3년 정도는. 그런데 예수 믿은지 5년, 10년, 그 이상 된 사람들의 삶이 변하지 않고 믿음이 자라지 않는데도 깨닫지 못해서 그런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어요. 그야말로 지식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죠. 뭘 더 배워야 하고, 깨달아야 하지요?


한국의 개신교가 변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뭔가를 더 알아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사고에서 못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몰라서, 깨닫지 못해서가 아니라 습관과의 싸움에서 패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장은 습관과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들을 행하던 습관과의 구체적인 싸움이 있어야 삶이 변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불편하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습관으로 길들여야 합니다.


가정교회 목장은 추상적인 개념을 연습하는 곳입니다. 직장에서 상처받고 왔을 때 서로 위로해주고 조언도 하고 때로는 따끔한 소리도 합니다. 세상과 교회 중간에서 습관을 바꿔줄 수 있는 곳이 바로 가정교회의 목장입니다. 성격 급한 사람들은 목장에서 대놓고 부부 싸움을 하기도 합니다.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런데 이런 것이 자꾸 노출되면서 서서히 삶이 변합니다. 목장 모임은 그런 장소입니다. 자기의 약점, 허점을 드러내면서 성경을 배우고, 관계를 배우고, 인내를 배우고, 용서를 배우는 실전과 같은 삶의 연습장입니다.


자기 고백적인 공동체는 장점도 있지만 자기 노출은 타인을 당혹스럽게 합니다. 특히 이런 얘기까지 해도 되나 싶을 때도 있을 텐데, 이때 지도자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목자, 목녀 교육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제가 휴스턴서울교회에 부임해서 제일 먼저 한 설교의 제목이 “교회는 병원이다”입니다. 목자, 목녀들에게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나를 보여주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옷을 벗게 하기 위해서는 목자, 목녀가 먼저 벗는 수밖에 없다, 교인들은 지금 여러분이 어느 정도까지 자신을 드러내는지 보고 자신들의 수위를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목자의 정직한 자기 드러냄이 목장 성공의 열쇠입니다.


처음에는 소문이 퍼지면 어떻게 하나 염려가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20년간 가정교회를 하면서 소문이 퍼져서 문제된 적은 고작 서너 차례밖에 되지 않습니다. 상대방은 가만히 있는데 나만 비밀을 얘기하면 소문이 나지만 비밀을 주고받으면 소문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너 차례 있었던 소음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던 사람들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공부 같은 분위기에서는 말을 잘 못하니까 먹는 자리가 중요해요. 밥을 먹다 보면 긴장이 풀어지고 가족 같은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그러면 이야기를 시작하기가 훨씬 수월하지요. 이것이 매주 반복되면 일종의 문화가 되어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워집니다. 목사가 설교를 통해서 메시지를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설교뿐 아니라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많이 드러내야 합니다.


목회자가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노출하는 과정에서 성도들의 목회자에 대한 신뢰감 하락이 우려됩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장로들은 주장하는 소리를 하지 말고 양무리의 본이 되라고 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본받고 싶으면 그 사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본받을 수 있겠어요? 반대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본받게 하려면 나를 노출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사실 교인들은 목회자가 굳이 용기를 내서 자기를 드러내지 않아도 목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 알아요. 목사 혼자서 교인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고 아닌 척하고 있지요.

 

사도 바울이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한 것은, 자신이 예수를 닮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성도들에게 본받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닮으려고 애쓰는 자신을 본받아 여러분도 예수 닮으려고 애쓰라는 권면이지요. 그래서 저는 불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목사지만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나도 미운 사람이 있고, 목사들끼리도 묘한 경쟁심이나 질투심도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차이가 있다면 여러분보다 제가 예수님 닮으려고 훨씬 더 애를 쓰고, 실패했을 경우 여러분보다 몇 배는 더 괴롭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불신자들도 이해해요. 약점을 노출하지 않으려고 애쓰지 말고, 얼마나 그리스도를 본받으려고 애쓰는지 보여줘야 합니다. 목회자에게 이런 모습이 있으면 교인들은 목회자를 존중하고 신뢰합니다.


교회에서 사모의 역할은 교역자도 아니고 일반 성도라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합니다. 사모의 역할은 어떻게 규정하시는지요?


사모의 위치가 애매하지요. 은사도 아니고, 직분도 아니잖아요. 가끔 사모학이라는 책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책을 쓸 만한 정보가 성경에 없어요. 그냥 경험에 기초해서 하는 이야기들이지요.


가정교회에서는 사모를 ‘헌신된 평신도’로 정의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모가 은사가 있는데 ‘사모는 가만히 있는 것이 좋다’고 해서도 안 되고, 또 은사가 없는데 ‘당신은 사모니까 이거 해라’고 하는 식도 안 됩니다.


가정교회에서는 사모는 돕는 배필로 남편을 보필하고, 또 헌신된 평신도로서 은사를 찾아서 일하도록 합니다. 단 교회 결정이나 시책에는 관여하지 않도록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사모가 부목사를 해고시키기도 한다는데 그건 사모의 역할이 아니지요. 저는 목회하면서 교역자들이 안수집사회, 당회에서 나오는 얘기는 아내한테 전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어요. 그래서 가정교회를 하게 되면 사모들이 기를 폅니다. 헌신된 평신도니까 은사가 있는 사람은 성경 공부를 맡기도 하고, 다른 은사가 있으면 은사에 따라 교회에서 사역합니다. 사모라고 해서 강요되는 것도 없고, 사모라고 해서 쥐 죽은 듯이 있을 필요도 없는 것이죠. 결국 사모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목장에서 서로 흉허물을 노출하면서도 그 공동체가 깨지지 않고 연합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가정교회 유지에 있어 성령의 역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많은 분들이 가정교회가 건강한 이유는 목장에서 치유가 일어나고 영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것보다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 뚜렷해지기 때문에 가정교회가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가정교회의 목표는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거예요. 이 목표를 놓치면 가정교회는 위험한 시스템일 수 있어요. 왜냐하면 자기들이 선택했고, 깊은 삶을 나누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파고들 수 없을 정도로 똘똘 뭉친 이기적인 집단이 될 수 있거든요. 영혼 구원해서 제자 만든다는 목적이 분명치 않은 제자훈련은 학자를 키우게 되어 있고, 영혼 구원해서 제자 만든다는 데 초점을 두지 않은 영성 운동은 결국 수도원운동으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이 목적을 놓치면 세속주의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영혼 구원해서 제자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하고, VIP(가정교회에서는 새신자를 VIP라고 부른다)를 위해서 기도하고,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VIP가 오면 식사를 대접하고, 이 사람이 예수 영접하면 다같이 기뻐합니다. 이것 때문에 목장이 유지되는 거예요.


물론 목장 모임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곳입니다. 나눔을 통해서 치유를 경험하고, 중보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도 체험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목적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영혼 구원해서 제자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시선을 자꾸만 여기에 돌리게 해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을 회복하고 집중하면 신약 교회 같은 열매가 나타납니다.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은 교회의 존재 목적을 상실한 것에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현상은 영혼 구원이라는 교회의 존재 목적 상실에서 비롯된 표류 현상입니다. 단순히 구호가 아니라 영혼 구원해서 제자 만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놓고 집중하면 교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전도 프로그램 하나 없이도 전도가 되고, 사랑하자는 구호가 없어도 사랑이 넘치고, 기도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아도 기도합니다. 다른 영성 프로그램도 필요 없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은 주로 전도 관련 설교를 하시는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영적 성장이나 회심이 건강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지정의가 골고루 터치돼야 합니다. 대학생 선교는 지성에, 부흥회는 감정에 치중합니다. 감동이나 감정을 통해서 격동시키는 것이지요. 그리고 빈민자 사역은 의지적인 면에 중점을 둡니다. 이것들도 어느 정도 열매는 맺지만 균형이 안 잡힙니다. 가정교회는 이 균형을 잡아 줍니다.


회심자를 예로 들어 볼게요. 목장은 감정을 표출하는 곳입니다. 처음 목장에 온 불신자는 교회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을 표출하나 나중에는 목장원들에게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감동을 받았다고 예수 믿게 되지는 않습니다. 목장에서 그 다음에 하는 것이 주중 성경 공부입니다. 성경 공부를 통해서 지적인 면에서 터치가 됩니다. 그러나 감동받고 정보를 얻었다고 해서 예수 믿는 것은 아니에요. 마지막으로 주일예배를 통해서 의지적인 도전을 합니다. 주일 예배의 목적은 헌신과 결심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의 설교도 이 주제에 맞춰져 있습니다. 전도 설교는 오히려 비중이 거의 없습니다. 전도는 목장과 목장 성경 공부에서 이뤄지죠.


그래서 불신자가 오면 예배에 초청하기 전에 목장을 먼저 경험하게 합니다. 복음에 대한 정보도 없이 예배 시간에 앉아 있어 봐야 아무 소용도 없거든요. 목장 모임, 주 중에 갖는 성경 공부, 주일 목장연합 예배가 유기적으로 엮여 튼튼하게 돌아갈 때 전도와 헌신이 일어납니다. 은혜로운 예배는 결심과 헌신이 일어나는 예배입니다.


성도들이 영혼 구원에 대한 감격이 약해지고 구령의 열정이 식어갈 때 어떻게 성도들에게 도전하시는지요?


도전보다 안에서 나와야 되는데, 제일 큰 것은 성도들의 간증입니다. 휴스턴서울교회에서는 거의 매주 수요일 침례 받은 성도들이 간증을 합니다. 그리고 목장에서 삶이 변하는 것을 보지요. 영혼 구원이라는 목적을 잃지 않으려면 불신자가 구원 얻는 것을 봐야 합니다. 구령의 열정, 구원의 감격이라는 것은 귀로 들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봐야 합니다. 내가 직접 겪어 봐야 생깁니다. 전도가 안 되기 때문에 교회가 침체된다고들 합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지요. 그러나 영혼이 구원받을 때 느끼는 감격을 경험해 본 교인들이 적기 때문에 교회가 침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교회에서는 불신자가 예수 영접하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목자, 목녀는 아직 목자, 목녀가 아니라고까지 얘기합니다. 영혼 구원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의무감과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목사님들이 전도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서 ‘크리스천이 이래서 됩니까?’ 이러면서 죄책감과 의무감을 들게 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마음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오래 가지 못합니다. 내가 한 영혼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경험을 해 봐야 합니다.


30년간 성공적으로 목회하신 후 얼마 전에 은퇴하셨는데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목회자상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좋은 목회자가 돼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좋은’의 의미입니다. 목회자들은 누구 눈에 좋은 목회자가 될 것인지, 누구 눈에 성공한 목회자가 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서 성경 하나 붙잡고 성경이 하라는 것을 단순하게 하는 것, 즉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세우려고 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목회자가 되려고 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성도를 세우려고 몸부림 치다보면 하나님께 인정받는 목회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가정교회를 하다가 실패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적어도 가정교회를 하다 보면 하나님께 인정받는 목회자가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성경 앞에 겸손해지고 따지지 말고 단순한 성경의 접근 방법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목회자가 돼야 합니다.


그리고 목회자가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교회를 비판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도 물들어 있어요. 세상을 바꿔야 할 교회와 목회자가 세상에 팽배한 성공주의, 물질주의에 완전히, 의식도 못할 정도로 물들었습니다. 이걸 벗어야 합니다. 일단 성공주의 신화에서 벗어나면 굉장히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목회하는 것 같다는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인간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도 교회도 주님의 뜻대로 하면 정말 행복하고 기뻐집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는 목회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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