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삶을 시간에 한 자매님이 질문하셨습니다. "선악과는 왜 만드셨나요?" 시간이 없어서 짧게 답을 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 가정교회 하기 이전에 가르쳤던 것을 내용을 정리하여 알려드릴 생각을 했습니다. 인쇄를 다 하고 나서 자매님 뿐 아니라 궁금해 하실 분이 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나눔터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선악과를 왜 만드셨는지 궁금해 하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500원은 안 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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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원래 사람을 걸작 품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그 걸작 품이 제구실을 못하고 타락해 버린 내용이 창세기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걸작 중의 걸작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고(1:26), ‘흙으로’ 그리고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심혈을 기울이셔서 만드신 것입니다.
옛날에 고려청자나 이조백자를 만들었던 도공들은 도자기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정성을 쏟아 넣었습니다. 걸작 중의 걸작 품을 만들기 위해 몇 달, 몇 년 동안 처자와 헤어져서 깊은 산중에 들어가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들의 작품은 오늘날도 남아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아침마다 목욕재계하고 냉수 떠놓고 산신령에게 빌고 나서 하루 종일 작업하고, 그 이튿날도 똑같은 스케줄을 따라 또 정성을 쏟아 드디어 멋있는 작품을 완성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아주 조그만 흠이라도 발견되면 그 공들여 만든 것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또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합니다. 또 흠이 발견되면 깨어 버리고 해서 드디어 흠이 없고 점도 없는 작품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도공은 갑자기 화를 내며 다시 마당에 내동댕이쳐서 깨어 버립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자신의 혼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숨결이 약동하지 않기 때문에 없애 버리고는 또 다시 시작합니다. 어느 날 장시간의 씨름 끝에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도자기가 완성될 때, 그 도공은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차게 되고, 그것을 상감마마에게 기꺼이 바치곤 했습니다. 작품의 진가가 나타나는 일, 즉 왕궁에서 임금님이 사용하는 가치 있는 일에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것도 이것과 비슷합니다. 흙으로 만드신 후에 하나님의 혼(‘생기’)을 불어 넣으셔서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최선을 다해서 공들여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아주 심혈을 기울이셔서 걸작 품을 만드신 후, 아주 가치 있는 목적에 사용하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닮은꼴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자식을 우리의 형상대로 낳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닮은꼴로 나오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엄청나게 가치 있는 걸작 품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하나님이 너무너무 사랑하는 자식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모든 천지 만물을 다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마치 임산부가 자기가 사랑할 자식을 낳기 전에 미리 이것저것 다 준비해 놓듯이, 하나님도 자기가 사랑할 자식을 만드시기 전에 먼저 완벽한 환경을 조성해 주셨던 것입니다. 임산부가 하나 준비한 후 만져보고 쓰다듬어 보면서 혼자 좋아하고, 또 준비하고, 또 좋아하듯이, 하나님도 첫째 날에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 다음, 그 다음 계속 창조하시면서 좋아하셨습니다(창1장). 임산부가 다 준비해 놓고 아기를 낳은 다음 아주 좋아하듯이, 사람을 만드시고 난 하나님의 눈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것입니다. 걸작 중의 걸작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 걸작품은 하나님의 혼이 들어가고 생명이 들어간 하나님의 자식입니다. 하나님과 사랑하는 관계를 위하여 창조된 귀한 존재였습니다.
흙으로 만드셨다는 것은 사람이 자연 세계의 한 부분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미술 공작 시간에 심심하셔서 흙을 가지고 장난하시다가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흙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사람 몸의 구성 원소나 흙의 구성 원소나 똑같다는 뜻일 것입니다.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질, 섬유질, 수분과 같은 성분은 사람 안에도 있을 뿐 아니라 흙에도 똑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연 세계의 한 부분으로 그 안에 살며, 그것을 즐기고, 사용하며, 다스리라고 즉 자연 세계에 참여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세상 모든 동물과 식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성분으로 흙 속에 살아야 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다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은 존재라는 점이 사람을 걸작 중의 걸작인 하나님의 자식에 되게 하는 것입니다. 자연 세계와 통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도 통하는 관계로 만들어진 것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사라질 때 사람은 흙밖에 남지 않는 존재가 되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을 때 자연 세계를 다스리는 위치에서 살게 되는 이것이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걸작품인 최초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말 걸작 중의 걸작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중요한 게 더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발적인 사랑과 섬김입니다. 하나님과 자발적으로 사랑하는 관계가 될 때 그것이 진짜 걸작 품이 되는 것입니다. 강압적으로 혹은 억지로 하나님을 순종하거나, 아니면 순종할 수밖에 없도록 조작되었다면 그것은 로봇이나 기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나라의 조종석에 앉아서 ‘찬송 단추’를 누르시면 사람이 찬송을 하고, ‘기도 단추’를 누르시면 기도를 하고, 이런 장면을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조종해서 된 결과를 가지고 무슨 사랑과 기쁨을 누리시겠습니까?
그래서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그런 관계를 갖게 하려고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에덴 동산에 두셨고 그것을 따먹을 수도 있고 안 따먹을 수도 있는 존재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2:9,17). 그것은 인격을 존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입니다. 관계성은 항상 자발적일 때 가치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창조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게 아무런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는 존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쪽을 택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자발적인 존재로 만드시고는 선악과로 그것을 테스트하신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않을 때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선악과를 따먹을 때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음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걸작품은 테스트에 합격했을 때 진짜 걸작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꼭 테스트를 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최초의 인간은 바로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갖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할 때 매우 슬퍼하시지만,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시므로 우리가 선택하도록 허락하시고 그냥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사람은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권리를 남용하여 하나님을 거부하는 쪽을 택했기 때문에 형편없는 졸작으로 전략해 버렸고, 그런 졸작들은 하나님과 공존하여 원래의 창조 목적에 사용될 수 없으므로 당연히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런 잘못된 선택에 상응하는 심판을 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걸작 품이었다가 쓸모없는 졸작으로 떨어진 사람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되게 하신 것입니다(엡2:10). 새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아주 가치 있는 존재로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
수업시간이 빠듯해 짧게 답해주셨지만 하나님은 로봇을 만든게 아니라는 비유를 통해 대략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이 질문은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봤음직한 의문이었을거라 여깁니다.
사악한 뱀은 또 왜 만드셨을까~~~ 도 포함해서요. ㅋㅋ
앞으로 누군가 저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자신있게 이해시켜줄수 있을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ㅡ스마트폰으로 댓글달다 숨 넘어갈뻔한 지효맘 올림ㅡ
아참, 500원은 키핑 해놓겠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