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쓰시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 아니라 약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약한 사람은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께 의지했을 때에 ‘하나님 사이즈’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후12:9). 하나님께서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을 불러서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로 사용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했다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사도권을 주장할 수 없었고, 오로지 성령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강점도 많았지만 약점도 컸던 것 같습니다. 성격이 강해서 남과 쉽게 부딪혔습니다. 외모도 별 품 없었고(갈4:13-14), 말도 유창하지 못했습니다(고후11:6). ‘몸의 가시’라고 부를 수 있는 치명적인 문제점도 안고 있었습니다(고후12:7).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사역을 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불러서 사용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도라면 내면적인 죄와의 갈등이 없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서 7장에 묘사되어 있는 죄와의 처절한 싸움을 어떤 주석가들은 크리스천의 구원받기 전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글의 흐름을 보아도 그렇고 내용을 보아도 그렇고, 구원받은 후의 상태를 그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죄와의 갈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계명을 지키려 했을 때 어김없이 맛보는 패배감. 오로지 성령님께 의존했을 때만 승리할 수 있는 죄와의 싸움. 그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을 겸손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을 죄인 중이 괴수라고 부르기도 하고(딤전1:15), 자신은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갈2:20).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용할 수 있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고(고후 12:9) 세상적으로 볼 때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빌 3:8). 우리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가 약하기 때문에 타락된 본성이 언제 머리를 들고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과 사역이 언제라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위기감을 가지고 매일 매일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과 기도 없이 살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 부분의 글은 최영기목사님의 글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