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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교회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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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신뢰하는방식이다릅니다.
담임목사  (ID:pastor,IP:58.150.21.2) 2012-02-04 23:53:48 63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휴스턴서울교회 최영기 목사님의 글을 옮깁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사랑으로 엮어진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가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존경심이 동반됩니다. 그러나 사랑과 존경은 개인에 따라 다르게 표현됩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손님께 하듯 깍듯이 존댓말을 합니다. 그렇다고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친구처럼 말을 놓습니다. 그렇다고 존경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과 존경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사랑과 경외가 공존해야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친밀감이 더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경외심이 더합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역경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신뢰의 표현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역경을 수용하는 것이 신뢰의 표현입니다. 두 쪽 다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표현 방법이 틀린 것입니다.

 

   저는 가정교회가 성경적인 교회라면, 신약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이 교회에서 재현되어야한다고 믿습니다. 주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고, 귀머거리의 귀를 열어주셨고,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하셨으니까, 가정교회에서는 시력장애자가 앞을 보게 되고, 청력장애자가 듣게 되고, 하반신 마비된 사람이 걷게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 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저의 신뢰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Joni Erickson Tada라는 분은 다릅니다. 이분은 젊을 때 다이빙을 하다가 척추를 다쳤습니다. 전신마비가 되어 누구의 도움이 없으면 일상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 집회에서 이분이 휠체어에 앉아서 간증하는 환하게 빛나는 얼굴을 보면서 우리가 천국에서 입게 될 영광스러운 몸이 저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자매는 자신의 치유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신의 신체장애를 수용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간증과 글을 통하여 역경에 처한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용기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에는 양면이 다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기적을 기대해야할 때도 있고,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을 수용할 때도 있어야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약간 한 쪽으로 치우친다 해도, 그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고, 자신만이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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