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기목사님이 쓰신 칼럼을 옮깁니다.)
수필을 쓰시는 이건숙 사모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이 월간 목회라는 기독교 지에 이런 내용의 글을 실었습니다. 어느 날 한 여 집사님이 입은 원피스가 너무 예뻐서 찬사를 던졌습니다. '그 옷 참 예쁘네요. 꽃들이 마구 살아나는 것 같아요.' 그러자 집사님이 이렇게 응했습니다. '이 옷은 15년 전에 산 것이라 낡았어요. 편안해서 버리질 못하고 입고 다니지요.' 그 순간 머쓱해졌습니다. 15년 전에 산 옷이라고 설명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었을 까요! '사모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 옷을 입으니 더 예뻐 보이지요?' 그러면, '그래요. 그 꽃들이 집사님을 더욱 젊게 만드는군요.' 둘 다 기분 좋게 대화를 끝내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감하고 인정하는 것이 힘든 것 같습니다. 사모님은 실험 삼아 하루 종일 비슷한 질문을 던졌답니다. 그랬더니 10명이면 10명 모두가 꼬리를 달면서 말을 인정해주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저녁 식사를 주문했을 때에 '이런 날은 날씨가 꾸물거려서 얼큰한 육개장을 먹고 싶네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 그릇 먹으면 몸이 풀릴 것 같지요?' 했더니 한 권사님이 '추운 날에는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냉면이 일품이지요. 우리 냉면 먹읍시다.' 5월 저녁 날씨가 싱그러워서 '우리나라의 봄 날씨는 참으로 싱그럽고 아름다워요.' 했더니 한 집사님이 '황사 덩어리로 오염된 날씨가 무엇이 싱그러워요. 더럽지요.'
재미있는 것은 사모님 자신도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날 서둘러 심방을 가야했습니다. 급한 바람에 빛깔이며 색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가 만들어준 투피스를 걸치고 나갔습니다. 신경이 쓰이는 판에 한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어머머! 오늘 입은 사모님의 옷이 너무 멋있어요. 정말 잘 어울리네요.' 이때에 자신도 모르게 다음과 같이 응수했습니다. '이 옷 거지같은 거예요. 친구가 만들었거든요.' 이때에 어색해하는 집사님의 얼굴을 보고 아차 했답니다.
인간관계, 특히 부부관계에 있어서 서로의 말을 간단하게 공감해주면 관계가 부드러워질텐데 이것을 못해서 서운함을 심어주고 한을 품게 만듭니다. 사실 젊은이들은 별로 문제가 없습니다. 칭찬을 해주면 사양하는 기색 없이 '감사합니다' 하고 시원스럽게 대답합니다. 어른들이 문제입니다. 항상 꼬리를 답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상대방의 말에 꼬리를 달지 말고 인정하고 공감해서 어떤 차이를 내는지 발견해보시기 바랍니다.
저 또한 누군가의 칭찬과 격려를 들으면 늘 뒤이어 설명하며 인정하지 않는 일들이 많았네요.. 나름 겸손하게 한다면서 ^^;; 그런데 그건 겸손이 아닌..그냥 습관처럼 익숙해져 버린 나쁜 습관인지도 모르겠네요.
앞으로 칭찬의 말에 인정하고 감사함을 표출하는 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글 읽고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