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정교회사역원 이경준 원장님의 글을 수정하여 옮깁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문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죄책감입니다. 얼마 전까지 코로나를 두려워하여 마스크를 쓰고 다닌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평소에는 죄책감이 없어 보이지만, 사람들이 암에 걸리거나 교통사고나 화재 등 불의한 큰 사고를 당하면, 첫 번째 생각나는 것이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에 대한 죄책감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을 들라면 보통 네 명을 듭니다. 소크라테스, 공자, 석가, 예수입니다. 이 분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요약하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이며, 공자의 경우 “인의예지신”이고, 석가는 “팔정도” 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자신의 주제를 알라는 말로, 말 그대로 윤리일 뿐 구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공자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서 인은 측은(惻隱)지심으로 불쌍한 것을 가엾게 여겨 정을 나누는 마음이고, 의는 수오(羞惡)지심으로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고, 예는 사양(辭讓)지심으로 겸손해 하며, 남을 위해 사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고, 지는 시비(是非)지심으로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이고, 신은 광명(光明)지심으로 중심을 잡고, 바르게 서서 밝은 빛을 냄으로 믿음을 주는 마음입니다. 여기에도 구원은 없고, 도덕만 있을 뿐입니다. 석가의 팔정도(八正道)도 그렇습니다. 정견(正見)은 바르게 보기, 정사(유)(正思(惟))는 바르게 생각하기, 정어(正語)는 바르게 말하기, 정업(正業)은 바르게 행동하기, 정명(正命)은 바르게살기, 정근(正勤) 또는 정정진(正精進)은 바르게 노력하기, 정념(正念)은 바르게 관찰하기, 정정(正定)은 바르게 삼매(집중)하기 입니다. 여기에도 모두 도덕입니다. 구원을 말하는 대목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종교에 대해 무작정 반박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종교를 그저 무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만 다른 종교는 단지 도덕(윤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혜롭게 말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신앙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인 죄책감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종교의 창시자도 그 문제를 해결했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그들도 모두 죽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죄를 자기의 몸에 몸소 지시고서, 우리가 가진 죄와 죽음을 대신하여 나무에 달려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신 후에 다시 살아나시고, 처음부터 계셨던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성인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심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선행이든, 고행이든, 참선이든, 무언가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교리일 뿐입니다. 모두가 세상에서 바르게 살라는 도덕적인 가르침만 주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도덕적으로 죄가 전혀 없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또한 착한 일을 많이 하거나 고행을 하거나 도를 많이 닦는다고 해서 자신이 가진 죄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인간이 가진 죄로 인한 죄책감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해결해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에 우리를 대신하여 내어 주셨고, 죄를 지은 우리를 값없이 받아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님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