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것을 다 해줍니다. 몸도 씻겨주고, 이도 닦아주고, 밥도 먹여주고, 화장실도 같이 가주고, 옷도 갈아입혀주고, 걷지 못할 때는 업기도 하고, 안고 다니기도 합니다. 그런 자녀가 조금 자라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부모는 자녀가 할 수 있는 것만큼은 알아서 해주기를 바랍니다. 씻는 것도 그렇고, 양치하는 것도 그렇고, 밥 먹는 것도 그렇고, 밥 먹고 난 후에 그릇을 개수대에 갔다놓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자라게 되면 부모는 거기에 맞추어 자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녀가 하지를 않습니다. 충분히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려고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 마음이 많이 속상할 것입니다. 자녀를 잘못 키운 것 같아서 속상하고,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속상할 것입니다.
요즘 저에게도 그런 속상한 마음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목사의 자리가 부모의 자리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얼마든지 주일 예배의 자리에 나오려고 하면 나올 수 있는데도 여전히 코로나 핑계를 대면서 나오지 않는 성도들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매일은 아니어도 일주일에 적어도 2-3번은 새벽에 교회당에 와서 기도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직분자들과 목자목녀들을 보면 그렇습니다. 수요기도회만 해도 그렇습니다. 코로나 전만 해도 연수 오시는 분들이 놀랄 정도로 직분자들과 목자목녀들 중심으로 많이 나와 함께 기도했기에 이제는 다시 수요기도회에 나올만한 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직분자들과 목자목녀들을 보면 그렇습니다. 토요새벽기도회도 그렇습니다. 토요새벽기도회는 1주일에 한번은 함께 모여서 선후배 목자들의 간증을 듣고, 주일 예배를 위하여 기도하며, 서로를 통하여 배우고, 격려하는 시간이기에 최소한 간증을 하거나 기도를 하는 목자목녀들은 그 자리에 함께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럴 때 제가 가진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신앙이 그 정도 성장 했다면 알아서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교회의 직분자라면 알아서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목자 목녀라면 알아서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어떻습니까? 저의 이런 생각이 잘못된 생각일까요? 제가 성도들이나 직분자들과 목자목녀들의 형편과 상황을 몰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우리교회가 추구하는 영성은 자연스러운 영성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아니라 꼭 해야만 하는 어떤 의무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알아서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일반 성도들도 그래야 하지만 연합교회 직분자들인 권찰들과 제직들 그리고 한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목자목녀 만은 알아서 해야 할 것은 알아서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고, 우리의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가 구하는 것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알아서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걱정하고, 잔소리 듣는 대상이 아니라 “알아서 잘해주어 고맙다.”고 칭찬 듣는 대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