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서울교회 이수관목사님의 글을 옮깁니다.)
인간은 누구나 상대방이 내 말을 잘 들어주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서 강의에 나선 대학교수도 학생들이 자기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 실패감과 자괴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한 두 사람이라도 자기의 말에 집중하고 관심을 기울일 때 보람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어린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어린 아이는 내가 사랑하는 부모가 나의 말을 잘 들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는 부모가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그 욕구 불만이 쌓이면 그것이 그에게 열등감의 시초가 되기도 합니다. 정신 심리학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가끔 아주 능력 있고, 직장에서 인정받는 사람인데도 이상하리만큼 자기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열등감으로 시달리다가 상담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살펴보면 그 원인이 성장하면서 부모가 자신의 얘기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아서였다는 얘기도 듣습니다.
따라서 남의 얘기를 들어 줄 때는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 사람의 존재에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의 생각을 함께 해 줄 때 그것이 그 사람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첫걸음이고, 반대로 나의 속 깊은 얘기를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나를 내어주는 첫걸음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속 깊은 얘기를 할 때는 언제나 용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용기를 냈을 때 우리가 그 사람의 말을 잘 들어 준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사랑으로 다가서는 것이며 그럴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잘 들어 준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단순히 남의 말을 듣고 있을 때는 그 사람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저 들려오는 단순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을 뿐입니다. 그 사람의 얘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귀를 기울이고 집중해서 들어주어야 하는데 거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들어 주는 것은 희생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듣는 능력은 우리가 가져야 할 큰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왜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말하기 훈련만 시키고 듣기 훈련은 안 시키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러던 우리가 드디어 목장에서 듣는 훈련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의 말을 들을 때 듣고 있는 척 하지 않고 실제로 듣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을 쳐다보고 있으면서도 내 순서가 되면 무슨 말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의 말을 화두로 해서 속으로 내 생각을 펼쳐나가지 않고, 또는 그 사람의 첫마디만 듣고는 이 말이 끝나면 무슨 얘기를 해 주어야지를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롯이 그의 생각에 집중해 주고, 그를 이해하려고 하고, 그의 마음을 알아주려고 할 때 우리는 치유하는 사람이 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