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스스로를 생각할 때 겸손한 사람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교만할 거리가 나에게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출신지도, 부모님도, 학교도, 물질도, 스펙도, 재능도 내세울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에 서는 것보다 늘 사람들 뒤에 서는 것이 좋았고, 나에게 무엇을 하게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까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에게도 교만함이 있다는 것을 어느 날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나에게도 상대적으로 나보다 더 못한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 보다도 그래도 낫다는 것입니다. 난 그래도 대기업을 나왔고, 난 그래도 1등을 해보았고, 난 그래도 장학금을 타 보았고, 난 그래도 내 집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나보다 나은 사람들을 내가 무시하는 것입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것에 대하여 인정하려고 들지를 않는 것입니다. “가졌으면 얼마나 가졌냐?”, “배웠으면 얼마나 배웠냐?”. “부모가 좋으면 얼마나 좋으냐?” 그런 것입니다.
이러한 교만함이 나의 모습에서 드러나는데 첫째는 말로 그들을 무시하거나 그들을 비꼬는 것입니다. “그렇지 뭐, 자기가 한 것이 없네, 부모 잘 만난 덕이네, 사람 잘 만난 덕이네” 둘째는 인사를 잘 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사를 해도 마지못해서 하거나 할 수 없어서 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인사하기 싫어서 상대방을 피해 다닐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교만함을 버리는 비결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빌2:3)”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도 나보다 나은 사람으로 여겨야 합니다. 설령 자신이 생각할 때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만난 다 할지라도 입니다. 그래서 요즘 제가 열심히 하는 것은 노회든지, 컨퍼런스든지, 기독교연합회를 가든지 내가 먼저 가서 인사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보다 낫든, 그 사람이 나보다 못하든 그런 것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들에게 교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하는 인사는 겸손함의 표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인들은 대 부분은 인사를 정말 잘합니다. 아이들도 정말 잘합니다. 연수 오시는 분들이나 집회를 오시는 분들이나 세미나에 오시는 분들이 하나같이 인사 잘하는 것에 놀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개 중에는 인사를 잘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담임목사에게도 마지못해 인사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그 중에도 나이가 많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괜히 교만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사람을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데 말입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당연이 그렇게 해야 하지만 직분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인사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온 연수가 오래된 분들일 수록 더 인사를 잘해야 합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신앙이 성숙한 사람일수록 고개를 숙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낮은 사람이 자기보다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인사를 먼저 하지만 교회는 그 반대여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위대한 자는 섬기는 사람이고, 으뜸 된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막10:43-44).
교만하지 않음에도 인사하지 않는 것 때문에 누군가에게 교만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자기 관리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리더의 위치에 있으면서 인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누군가에게 교만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리더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누구나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것은 우리 교회가 만들어 온 아름다운 문화입니다.^^;